당쟁은 조선 후기 사림 정치에서 파생된 정치 현상 중 하나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정치 주체가 누구를 중심으로 하는 시대 구분을 통해서 역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또 문화가 달라짐을 알 수 있죠.
조선의 정치를 담당한 계층은 인문에 능한 문반과 무술에 능한 무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둘을 합쳐 양반이라고 불렸는데요. 처음에는 문무 관료라는 의미를 가지던 양반이
나중에 이르러서는 그 가족, 친족까지를 포괄하는 신분 개념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 양반들 중에서 어떤 정치 세력이 정치를 주도 했느냐에 따라 조선 역사들이 바뀌어지면서 매우 중요해졌는데요.
그래서 조선의 정치사는 집권한 정치 세력 중심으로 역사가 달라지기에 그 내용들을 같이 알아보고 배우려 합니다.
당쟁이 시작하기 전 어떠한 세력들이 집권을 했냐부터 알아봐야 되는데요.
조선시대에서 초기부터 집권한 세력 순서로 나열을 해보자면요.
사대부 정치기, 훈신 정치기, 사림 정치기, 탕평 정치기, 외척세도정치기로 이렇게 구분이 되고,
사림 정치기부터 당쟁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럼 이 시기들의 흐름을 그러면 하나하나 이야기해 볼까요?
사대 부정치기
사대 부정치기는 고려말, 조선 초기에 유학적 소양을 지닌 문관 관료인 신흥 사대부들이 집권한 시기를 말합니다.
12세기부터 원나라를 통해서 전래한 주자학은 무신정권 당시 새롭게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시작한 신흥 사대부들의 이념적 무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의와 염치를 숭상하는 주자학 이론으로 권문세족의 부정부패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원래 사대부는 문관의 5품 이하인 사( 士 )와, 4품 이상인 대부 大夫 등 문관 관료를 통칭하는 용어였는데,
초기의 의미와는 다르게 후에는 문관 관료뿐만 아니라 무관 관료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고려 말에는 문관 관료인 신흥 사대부 이외에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서 신흥 무장 세력들이 등장했는데요.
조선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 세력이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역시 조선 왕조의 건국 과정에서 넓은 의미의 사대부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교적 문치주의에 따라 문신들이 주도 세력이 되어버렸는데요.
문신들은 무신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것을 억제했을 뿐 아니라 정치 참여도 철저히 제한했어요.
사대부들은 행정 실무자인 서리와 여자, 환관들의 참여 또한 같이 봉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중국의 문치주의에서 배운 것인데요.
다만 환관의 경우 중국에서는 그들의 득세를 억누르지는 못했었지만 철저히 권력에서 배제해 버렸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중앙 집권 체제의 강화를 위해 군현제도를 개편하고,
지방 향리를 행정 실무자인 중인으로 격하시키는 한편, 지방 사족(지방 귀족)의 지배적 지위를 확고히 해줌으로써
이들을 왕조의 정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군현마다 향교를 설치해서 유교 교육을 강화하고,
여기서 길러진 인재들을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관료로 불러올렸는데요.
이러한 사대부 정치기의 조선은 새 왕조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비교적 공정하게 인재에게 등용시킨 시기이며,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정치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힘쓴 부분이 보였던 시기입니다.
훈신 정치기
그다음에 나타난 정치 세력 시기는 훈신 정치기입니다.
사대부 정권이 확립되면서 이들의 기득권이 강화되었는데요.
그러면서 신흥 사대부들이 새로운 귀족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왕권은 철저히 제약받았고, 국가의 법제는 이들의 권익 보장을 위해 편파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독주가 펼쳐지자, 새롭게 정계에 진출하고 싶었던 지방 사람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기 위해 시작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사대부 정권을 타도시켜 버렸는데요.
이때 세조의 정란공신이 생겼고, 이후 성종 때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서 250명의 공신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훈구파가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는데요, 이 시기를 훈신 정치라고 합니다.
훈신 정치기는 인사권과 언론 권이 대체로 재상이나 대신들에게 있던 것이 특징인데요.
한편 세조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집현전 학사들을 대신할 세력으로
김종직을 비롯한 젋고 야심 있는 지방의 사림을 정계에 불러들이게 되었어요.
이들은 공신 세력을 견제하려는 국왕들의 비호를 받으며 사림파라는 이름으로 파를 구성하게 되었는데요.
기존 사대부 정치 그때는 사대부가 문무 관료들만을 의미하는 데에 그쳤다면,
사림은 유교 교양을 갖춘 독서인 층을 포괄하는 양반 지식인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림파는 경학을 중시하고 도덕적 수양을 내세우는 경 학파였는데요.
주자학의 철학 이념을 깊이 연구해 훈구파의 부정과 부패를 공격했습니다.
그러한 공격으로 인해 세력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파에 의해 사림파가 화를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사건을 사화라 합니다. 사실 이 두 세력의 충돌은 이미 세조의 개혁 정치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훈신 정치기는 세조 때부터 중종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중종 말기 때 바뀌게 권 신정치기로 잠깐 넘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공신 세력이 늙어 죽고, 과도한 개혁 주장에 염증을 느낀 중종이 사림파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면서
정권이 외척 권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의 사림파 세력들은 아직 정권을 차지할 만한 이렇다 할 세력을 갖추지 못한 과도기에 차지한 거기도 하고,
또 세력 장악 능력이 부족해 세력의 인재를 전랑이나 언관에게 배치하는 정도에 그쳐서 끝나게 되었고,
이들의 집권 시기가 끝나면서 드러나게 된 새로운 세력 정치기가 바로 사림 정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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